맨발로 원주를 걷는 일주일의 이야기! <1> - 치악산 구룡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길, 그리고 세렴폭포와 영원산성 글/사진: 이종원 치악산의 가을은 단풍이 아니다.
신록이다.
초록의 터널을 뚫고 나온 연두빛 잎사귀가 온 산에 가득하다.
그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따갑지만 숲 속으로 들어가면 시원한 계곡물소리가 귀를 씻어준다.
산길을 걸으면 발바닥이 간지럽다.
나무뿌리가 돌부리에 걸려 삐끗했나보다.
흙길과 자갈길이 번갈아 이어진다.
발 아래서 부서지는 낙엽 소리도 정겹다.
바스락거리며 떨어지는 나뭇잎을 밟으며 걷다보니 어느새 구룡사가 보인다.
절 입구엔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때면 운치가 그만이란다.
구룡사의 명물인 거북바위.
대웅전 앞뜰에 있는데 구룡사 창건 설화를 담고 있다고 한다.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경순왕의 왕사인 김거달장(居達長)이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하지만 전설일 뿐 역사적 근거는 없다.
조선시대까지 사찰명은 영시암(永矢庵), 또는 봉림산(鳳林山) 봉림사(鳳林寺)였단다.
지금의 이름은 1708년(숙종 34)에 의상의 제자이자 승장인 철선묘행(鐵禪妙行)이 중건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구룡교를 지나면 일주문 대신 금강문이 나온다.
문 좌우 기둥에는 청룡과 황룡이 서로 마주보며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다.
사천왕상이 지키는 천왕문과 달리 금강역사 둘이 눈을 부릅뜨고 이곳을 지킨다.
이들에게 인사라도 하라는 뜻일까? 아니면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의미일까?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금강문을 통과하면 보광루 너머 대웅전이 보이고, 그 뒤로 원통전 산신각이 자리잡았다.
구룡사의 오랜 보물들이다.
원통전의 관세음보살상은 정조대왕이 직접 만들었다고 전해온다.
불단 오른편에는 거대한 목탁모양을 한 종루가 있다.
새벽예불과 저녁 예불 때 사용한다.
범종각 옆에는 큰 북 모양의 법고가 놓여있다.
아침저녁 예불시간을 알리거나 법회 등 대중을 모을 때 쓴다.
원통전과 지장전을 둘러보고 나오면 다시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계단 끝에는 석탑 하나가 세워져 있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이라고 한다.
기단부에 거북이 네 마리가 새겨져 있어서 '포뢰'라고 부른다.
머리는 용머리이고 몸은 물고기 꼬리 형상을 했다.
입 안에 구슬 2개를 물고 있다.
구룡사를 나와 본격적인 등산로로 접어든다.
여기서부터 비로봉 정상까지 약 3km 거리다.
제법 경사가 심하다.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가파르다.
깔딱고개라 부를만 하다.
고개를 넘으면 바로 사다리병창코스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비로봉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천당폭포로 떨어진다.
우리는 곧장 오른다.
조금 오르자 입이 쩍 벌어지는 광경이 펼쳐진다.
바위산이 온통 울긋불긋 물들어 있다.
마치 수채화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다.
아니 붓질 몇 번 만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자연이 그려낸 걸작앞에 넋을 잃는다.
구룡사계곡 초입부터 펼쳐진 환상적인 단풍의 세계.
걸음을 옮길수록 탄성이 절로 터진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드디어 능선에 닿았다.
비로봉 정상이 지척이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야 한다.
저 멀리 겹겹이 쌓인 산줄기가 장관이다.
구름이 살짝 벗겨졌다.
손을 뻗치면 잡힐 듯하다.
비로봉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막힘없는 조망이 펼쳐진다.
동쪽으로는 푸른 동해바다가 넘실거린다.
남쪽으로는 첩첩이 이어진 산맥이 파도처럼 밀려간다.
서쪽 역시 완만한 산자락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북쪽으로는 시명봉과 남대봉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하산은 반대편으로 할 예정이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향로봉을 거쳐 국향사로 내려갈까 생각 중이다.
비로봉 정상 돌탑 주변은 사진찍기에 좋은 곳이다.
삼각대를 세우기 안성맞춤이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춥다.
서둘러 내려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