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왜 저러지?★...예쁜 손톱은 예쁨의 상징일까.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떠나지 않고 거친 땅을 일구는 농촌 아낙네들의 손톱에 요즘 시선이 간다.
세상 시름도 깊어지는데 손톱 끝까지 가꾸며 예쁘게 살려는 모습에서 삶과 희망을 본다.
사진 제공 작은나무희망재단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 전하고자 선교의 주춧돌이 된 사람들이 있다.
그 주춧돌 곁엔 어김없이 손톱이 자란다.
얼굴만큼이나 예쁜 손톱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던 이들.
이제는 하늘나라로 떠난 그들 대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너무 어려운 조건 속에 살아가는 이주민 노동자를 위해 기도하기, 한 끼 식사 대접하기 등 작지만 큰마음 나누기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 ---------------------------------- 오늘의 묵상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움에 대한 치유와 믿음입니다.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 지내면서 정말 두려웠습니다.
그것은 답답함이요 또한 상처였습니다.
그런데 수도원 담장 너머 저쪽 산꼭대기에 불빛이 보였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통행금지를 지키지 않아 그런 곳에 올라가면 안심할 수 있다고 동료 수사님이 이야기해 줬습니다.
그러나 그런 편안한 마음 때문에 더 괴로웠습니다.
왜냐하면 워낙 낯선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란 높은 장벽을 넘어야만 구원에로 초대되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로써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실행해야 참다운 계명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번민 중에 '정말 그래도 되는가?' 하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지며 담금질했습니다.
처음에는 나보다 훨씬 강하게 다가오는 계명으로부터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자신을 낮추는 겸손은 잊어버리고 자아를 점점 부풀려 갔습니다.
공동체의 모범인 사제로서 자격조건을 갖추려고 기를 썼습니다.
신자들 앞에 경건하게 보이려고 언제나 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손해 보고 다치는 쪽이었습니다.
특별히 바깥일에 바쁜 본당의 일과 겹치면 더욱 그랬습니다.
남에게 부탁받아 하는 일이 겹칠 때에도 그랬습니다.
나중에는 같잖아서 내 스스로 해야 한다는 자책감마저 들었습니다.
결국 모든 수고가 헛고생인 듯싶어서 두렵기만 했습니다.
이러다간 고립된 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다시 세속으로 돌아갈까 봐 겁이 났습니다.
밤새워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고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성체 조배실에서 마침내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나이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이때 감겼던 눈이 떠졌습니다.
조금씩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성당 문을 나섰습니다.
그때 온몸 가득 평화와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사제생활 40년 만에 느껴보는 참된 보람이었습니다.